연결재무제표의 현금은 그룹 안 모든 법인의 현금을 합친 숫자다. 그 돈이 다 본사 계좌에 있는 건 아니다. LG전자 2021년 반기 검토보고서 주석에는 이집트, 알제리,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에 있는 종속기업의 현금이 현지 외환규제 때문에 국외로 내보내는 데 제약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러면 6조1,863억원의 연결 현금 가운데 얼마가 묶여 있을까. 공시에는 그 금액이 없다.
2021년 6월 말 숫자
| 항목 | 2020년 말 | 2021년 6월 말 |
|---|---|---|
| 연결 현금및현금성자산 | 5,896,309 | 6,186,301 |
| 유동 금융기관예치금 | 82,018 | 80,129 |
| 두 항목의 단순 합계 | 5,978,327 | 6,266,430 |
| 유동 차입금 | 1,450,135 | 1,695,562 |
단위는 백만원이다. 반기 동안 현금은 2,900억원, 약 5% 늘었다. 1년 안에 갚을 차입금은 1조6,956억원이니 현금이 그 3.6배쯤 된다. 숫자로만 보면 여유가 있다.
주석에는 다른 제약도 하나 있다. 사우디 합작법인 LG-Shaker는 재무제표 확정과 배당에 주주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하다. 이건 국가 규제가 아니라 합작 파트너와의 약속이다. 성격이 다른 제약이니 같은 잣대로 묶어서 보면 안 된다.
공시가 말해 주지 않는 것
제약이 있다는 사실은 적혀 있는데 나라별 현금 잔액은 없다. 6조원 중 몇 퍼센트가 묶여 있는지 확정할 방법이 없다. "해외 현금 상당 부분이 묶여 있다"고 쓰는 것도, 제약을 무시하고 6조원을 다 쓸 수 있는 돈으로 보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그리고 제약이 있다고 그 돈을 현지 영업에도 못 쓰는 건 아니다. 국경을 넘길 때 조건이 붙는다는 뜻이다.
LG-Shaker 쪽 제약도 성격이 비슷하다.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하다는 건 배당을 받으려면 합작 파트너가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 법인의 현금을 영영 못 쓴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본사가 원하는 시점에 돈을 끌어오기는 어려울 수 있다. 국가 규제와 계약상 제약은 풀리는 방식이 달라서, 둘을 한데 묶지 않고 따로 적어 두는 게 맞다.
비율을 가정해 보면
확정할 수 없으니 대신 "만약 이만큼 묶여 있다면" 하고 비율을 넣어 봤다.
| 현금에서 제외하는 가정 비율 | 가정상 남는 현금, 백만원 | 연결 유동 차입금 대비 |
|---|---|---|
| 0% | 6,186,301.0 | 3.6485배 |
| 10% | 5,567,670.9 | 3.2837배 |
| 20% | 4,949,040.8 | 2.9188배 |
| 30% | 4,330,410.7 | 2.5540배 |
10%포인트씩 더 묶일 때마다 커버리지가 0.36배쯤 내려간다. 계산해 보면 연결 현금의 73% 가까이가 묶여 있어야 겨우 유동 차입금과 같아진다. 2021년 LG전자의 해외 사업 구조를 생각하면 그 정도로 묶였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래서 이 시점의 LG전자는 반출 제약이 있다 해도 단기 차입금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유동 차입금 말고도 매입채무, 리스, 운영자금이 나간다. 차입금만 덮는다고 유동성이 충분하다는 뜻은 아니다.
묶인 현금의 크기를 가늠할 단서
공시가 나라별 현금을 밝히지 않더라도 짐작할 실마리는 있다. 가장 손쉬운 건 지역별 매출이다. 사업보고서 부문 정보에 지역별 매출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제약 국가가 속한 지역의 매출 비중이 작다면 그 나라에 쌓인 현금도 전체에서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연결 주석의 종속기업 요약 재무정보도 도움이 된다. 해당 국가 법인의 자산 규모를 보면 대략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회사가 직접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송금 제한 때문에 손실을 봤다거나 배당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 사업보고서 본문이나 IR 자료에 있다면 그 규모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방법은 다른 회사에도 쓸 수 있다. 연결 현금에서 일정 비율을 빼 보고 그래도 단기 부채를 감당하는지 확인하면 된다. 조금만 묶여도 부채를 못 덮는 회사일수록 현금이 어디에 있는지가 결론을 좌우한다.
2021년 이후 이 나라들 가운데 일부는 제재나 환율 급변 같은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반출 제약은 단순한 주석 문장이 아니라 실제 손실이나 자금 묶임으로 바뀔 수 있다. 이런 주석은 한 번 보고 넘길 게 아니라, 해마다 문구가 어떻게 바뀌는지와 새로운 나라가 추가되는지를 따라가 보는 게 좋다. 문구가 길어지는 해가 바로 주의할 해다.
현금은 크기만큼 위치도 중요하다
현지 공장의 월급과 원재료 대금은 현지 현금으로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으로 본사 회사채를 바로 갚을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다. 연결 회계가 그룹을 한 회사처럼 보여 줘도 법인마다 계좌와 배당 절차는 따로 있다.
신흥국 매출 비중이 큰 회사를 볼 때는 연결 현금 숫자 옆에 이런 반출 제약 주석이 있는지 찾아보길 권한다. 있다면 그 현금은 액면 그대로보다 조금 할인해서 생각하는 게 안전하다. 얼마나 할인할지는 공시가 금액을 밝히지 않는 한 위처럼 범위로 따져 보는 수밖에 없다.
여기 적힌 건 2021년 6월 말 시점의 공시다. 그 뒤 러시아 관련 제재 같은 변화는 반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