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 매출채권 충당금이 절반으로 준 건 떼인 돈을 지웠기 때문이다

대손충당금이 크게 줄었다고 하면 보통 좋은 소식으로 읽는다. 떼일 것 같던 돈이 들어오고 있거나 거래처 사정이 나아졌다는 뜻일 테니까. DL의 2023년 매출채권 충당금은 44억원에서 21억원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변동표를 열어 보니 평가가 좋아져서 되돌린 환입은 4천만원뿐이었다. 줄어든 23억원 가까이가 '제각', 즉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장부에서 지운 금액이었다.

충당금 변동표

충당금 변동표 · 표 1
변동 항목 2023년 금액, 백만원
기초 충당금 4,364
개별평가 환입 -14
집합평가 환입 -27
제각 -2,235
회수 관련 충당금 감소 -34
기타 증감 +48
기말 충당금 2,102

DL 2023년 연결감사보고서의 매출채권및기타채권 손실충당금 주석이다. 잔액은 22억6천만원 줄었고, 그중 제각이 22억4천만원으로 99%를 차지한다. 개별·집합평가 환입을 합쳐도 4,100만원으로 2%가 안 된다.

이건 신용이 좋아진 게 아니다. 이미 쌓아 둔 충당금을 실제로 떼인 채권을 지우는 데 썼더니 잔액이 줄어든 것이다. 비유하자면 비가 와서 우산을 꺼내 썼더니 우산꽂이가 비었는데, 그걸 보고 날씨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각된 채권이 언제 처음 문제가 됐는지, 누구 채권인지는 이 표로 알 수 없다. 2023년에 갑자기 생긴 손실이라기보다 이미 충당금으로 반영해 둔 손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범위를 넓히면 오히려 비용이 늘었다

같은 표에는 미수수익과 장기대여금, 장기미수수익 충당금도 있다. 이것까지 합쳐 보면 그림이 또 달라진다.

범위를 넓히면 오히려 비용이 늘었다 · 표 2
선택한 전체 채권 범위의 변동 금액, 백만원
기초 충당금 합계 13,746
손상차손·환입 순액 +753
제각 -2,235
회수 관련 감소 -34
기타 증감 순액 +49
기말 충당금 합계 12,279

네 계정 합계로는 충당금이 137억원에서 123억원으로 15억원 줄었다. 그런데 손상차손 항목은 +7억5천만원으로 비용 쪽이다. 매출채권에서 4천만원을 환입했지만 장기미수수익에서 7억9천만원을 새로 손상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DL 충당금 감소로 신용비용 개선"이라고 쓰면 두 번 틀린다. 매출채권만 보면 감소의 대부분이 제각이고, 범위를 넓히면 오히려 새 손상이 잡혔다.

장기미수수익은 받기로 한 이자를 아직 못 받아 장기로 쌓아 둔 계정이다. 여기서 손상이 새로 잡혔다는 건 그 이자 일부를 못 받을 수 있다고 회사가 판단했다는 뜻이다. 매출채권보다 눈에 덜 띄는 계정이라 충당금 기사에서는 대개 빠진다.

기타 변동에도 볼 게 있다. 유동 미수수익에 +14억원, 비유동 장기미수수익에 -16억원이 찍혀 있어서 순액은 거의 0이다. 장기에서 단기로 분류가 옮겨 간 것처럼 보이지만 공시가 이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충당금 감소를 볼 때

받기 어려운 채권을 정리하기만 해도 충당금 잔액은 줄어든다.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미 인정한 손실을 장부에서 치운 것이다. 충당금이 줄었다는 숫자를 보면 변동표를 열어 전입, 환입, 제각 중 어느 줄이 움직였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매출채권만 볼지 기타채권까지 볼지에 따라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둘 만하다.

털어 낸 다음 해가 중요하다

DL의 연령표에서 손상된 매출채권은 기말 충당금 21억원과 같은 금액으로 이어진다. 회사가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채권은 그만큼 충당금으로 덮어 두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2023년에는 그런 채권 22억원어치를 아예 장부에서 지웠다.

제각이 큰 해에는 충당금 잔액이 갑자기 줄어드는 게 보통이다. 이미 손실로 잡아 둔 채권과 그 충당금이 장부에서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충당금이 줄었다고 남은 채권의 질이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쁜 채권을 정리하고 나서 숫자가 가벼워진 것에 가깝다.

이런 해를 지나고 나면 다음 해 숫자가 더 중요해진다. 정리할 것을 정리한 뒤에도 새 손상이 꾸준히 생긴다면 거래처 신용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손상이 거의 없다면 2023년의 제각은 과거 부실을 털어 낸 일회성 정리였다는 뜻이다. DL은 같은 해 장기미수수익에서 7억9천만원의 새 손상이 생겼으니, 다음 해에는 이 계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함께 보면 좋다.

이 틀은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의 충당금을 볼 때 특히 쓸모 있다. 일반 기업은 충당금 규모가 작아서 숫자 하나하나가 크게 출렁이고, 제각 한 번으로 잔액이 절반이 되기도 한다. DL의 2023년처럼 말이다. 그래서 일반 기업의 충당금 증감률을 그대로 신용 개선이나 악화로 읽는 건 위험하다. 금액이 작을수록 변동표를 직접 열어 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다행히 그 수고는 길지 않다. 표 한 장이면 된다. 그 한 장이 충당금 감소의 성격을 거의 다 알려 준다.

출처

원문 링크

목차
  1. 충당금 변동표
  2. 범위를 넓히면 오히려 비용이 늘었다
  3. 충당금 감소를 볼 때
  4. 털어 낸 다음 해가 중요하다
  5.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