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024년 재고 주석을 보면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평가 전 재고는 1년 새 2조2,842억원 줄었는데, 재무상태표의 재고자산 장부금액은 오히려 1,290억원 늘었다. 처음엔 오타인가 싶었다.
원인은 그 사이에 낀 평가충당금이었다.
세 숫자
| 항목, 백만원 | 2023년 말 | 2024년 말 | 변화 |
|---|---|---|---|
| 평가 전 재고 | 59,022,026 | 56,737,864 | -2,284,162 |
| 평가충당금 차감액 | -7,396,152 | -4,982,999 | +2,413,153 |
| 차감 후 장부금액 | 51,625,874 | 51,754,865 | +128,991 |
| 충당금/평가 전 금액 | 12.5312% | 8.7825% | -3.7487%포인트 |
재고는 팔릴 가격이 원가보다 낮아지면 그 차이만큼 평가충당금을 쌓아 장부금액을 깎는다. 2023년 말에는 7조3,962억원을 깎아 두었는데 2024년 말에는 4조9,830억원만 깎았다. 깎는 금액이 2조4,132억원 줄었다.
평가 전 재고가 2조2,842억원 줄었지만 충당금이 그보다 더 많이 줄어서, 결과적으로 장부금액은 1,290억원 늘었다. 충당금 비율도 12.5%에서 8.8%로 내려갔다.
2023년은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크게 떨어졌던 해다. 그때 쌓아 둔 충당금이 2024년에 줄어든 건 가격 회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주석에 충당금 변동의 원인별 내역은 나와 있지 않다.
충당금이 줄었다고 다 이익은 아니다
충당금이 2조4천억원 줄었으니 그만큼 환입이익이 났다고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충당금 잔액은 환입 말고도 관련 재고가 팔리거나 폐기될 때도 줄어든다. 예전에 깎아 둔 재고를 팔아 버리면 그 재고에 붙어 있던 충당금도 함께 사라진다. 주석에는 매출원가에 평가손실이 들어 있다고만 적혀 있어서 그해 손익에 얼마가 잡혔는지는 알 수 없다.
항목별로는
2024년 말 순장부금액은 제품·상품 13조8,423억원, 반제품·재공품 22조3,405억원, 원재료·저장품 14조1,463억원, 미착품 1조4,258억원이다. 전년과 비교하면 제품·상품만 7,107억원 줄었고 나머지 셋은 모두 늘었다.
완제품은 줄고 만들고 있는 제품과 원재료는 늘었다. 판매가 살아나면서 완제품 재고를 소진하고 생산을 다시 늘리는 흐름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럴듯한 해석이지만 사업부별 수치가 없어서 확정할 수는 없다.
현금흐름표의 재고 조정은 또 다른 숫자
현금흐름 주석의 2024년 재고 조정은 +2조5,414억원이다. 재고 장부금액이 1,290억원 늘었으니 현금흐름에서는 -1,290억원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큰 플러스다. 평가충당금 변화나 환율 효과가 섞여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둘을 완전히 이어 주는 명세가 공시에 없어서 나머지 차이는 설명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재고가 도는 속도로 보면
주석의 '비용 인식 재고 원가'를 쓰면 재고 회전일수를 어림할 수 있다. 2024년 말 장부금액 51조7,549억원을 그해 비용 인식 재고 원가 181조2,424억원으로 나누고 365를 곱하면 약 104일이다. 2023년은 같은 방식으로 약 106일이다. 재고가 비용으로 넘어가는 속도로 보면 두 해가 거의 같다.
평가 전 금액으로 계산하면 2023년 약 121일, 2024년 약 114일이다. 이 기준으로는 재고 부담이 일주일쯤 줄었다. 어떤 금액을 분자로 쓰느냐에 따라 "그대로"와 "개선"이 갈린다. 장부금액과 평가 전 금액이 반대로 움직였던 앞의 이야기가 회전일수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 일수는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을 다 합친 값이다. 반도체 재고가 늘고 가전 재고가 줄었다면 합계로는 아무 일도 없어 보일 수 있다. 사업부별 재고는 공시에 따로 나오지 않아 더 쪼개지는 못했다. 그래도 총액 수준에서 재고가 계속 쌓이고 있다는 신호는 이 숫자들에서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회사의 재고를 볼 때는 이 회전일수가 몇 분기 연속 늘어나는지를 지켜보는 게 업황 변화를 일찍 알아채는 방법 중 하나다.
재고는 쌓이는 속도와 깎이는 금액을 함께 봐야 한다. 평가 전 금액이 줄고 충당금도 줄었다면 재고 부담이 가벼워진 해로 볼 수 있다. 평가 전 금액은 늘었는데 충당금도 함께 늘었다면 팔기 어려운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2024년 삼성전자는 앞의 경우에 가까웠다.
재고를 볼 때
장부금액 한 줄로 재고가 늘었다, 줄었다를 말하면 이번처럼 실제와 반대로 읽을 수 있다. 평가 전 금액과 충당금을 같이 펼쳐 보는 편이 낫다. 특히 반도체처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산업에서는 충당금이 재고 숫자를 크게 흔든다. 삼성전자 2024년은 재고 자체는 줄었고, 가격 하락에 대비해 깎아 두던 몫도 줄어든 해였다.
출처
- 삼성전자 사업보고서 · DART 접수번호 20250311001085
- 공식 감사보고서